제6장

정령은은 지정된 룸 앞에 멈춰 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 양옆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장식 조각들이 허공에서 흩날렸다.

“령은 언니, 생일 축하해!”

“우리 령은 언니, 영원히 열여덟 살!”

낭랑하고 맑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룸 안의 조명이 어두침침한 상태에서 환하게 바뀌었다.

문우빈이 꽃다발을 들고 정령은에게 다가왔다. 장난기 넘치는 잘생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룸 안에는 낯선 얼굴도 몇몇 보였다. 아마 문우빈이 해성시에서 사귄 친구들인 듯했다.

정령은은 몇 초간 살짝 어색해하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리고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 우빈이, 신경 좀 썼네.”

그녀는 주윤우와 결혼한 이후로 예전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

문우빈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에도 신경 썼거든? 령은 누나가 남자에 미쳐서 안 나온 거지. 가영이는 오는 길에 차가 막힌대. 한 십 분, 이십 분 정도 더 걸릴 거야.”

정령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문우빈이 데려온 친구들은 모두 그녀를 처음 보는 터라, 미리 준비해 온 선물들을 하나둘씩 그녀 앞에 내밀었다.

“령은 누님,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사 왔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건넨 남자는 조금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령은이 흘깃 보니, 포장 상자에는 국내 최대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찍혀 있었다.

정말 ‘아무거나’ 사 온 모양이었다.

정령은은 차소아의 무의식적인 재력 과시를 겪은 후 이미 마음이 고요한 호수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

마지막 사람이 선물을 건네는 바로 그때, 룸 문이 예고도 없이 벌컥 열렸다.

“가영……”

문우빈이 한 글자를 외치자마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험악해졌지만, 정령은이 있는 앞이라 억지로 분을 삭여야만 했다.

목소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령은 누나, 주윤우가 왔어.”

그 이름을 듣자, 여자는 무심하게 눈을 들어 올렸다. 그 자태는 우아하면서도 나른했다.

그녀의 양옆에는 문우빈의 남자 친구들이 앉아 있었고, 그 광경은 주윤우의 눈빛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그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세 글자를 뱉었다. “정령은.”

“주윤우 씨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죠?”

정령은의 태도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문우빈이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거, 싸운 건가?

하긴, 생각해보면 지난 몇 번의 생일 때마다 정령은은 늘 핑계를 대며 나오지 않았다.

올해 나오겠다고 한 것 자체가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이리 와.”

주윤우가 차갑게 명령했다.

정령은이 문득 웃었다. 복사꽃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지만, 그 눈빛 속은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주윤우 씨, 우리가 이혼했다는 걸 잊으셨나 봐요.”

여자의 말이 터져 나오자, 문우빈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령은 누나, 이 자식이랑 이혼했어? 언제? 왜 우리한테 연락 안 했어? 우리가 제대로 파티 열어줬을 텐데.”

잘 헤어졌다! 진작에 정령은에게 주윤우와 이혼하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정령은의 주먹이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주윤우 따위가 어디 정령은에게 짝이 된단 말인가?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문우빈의 말에 주윤우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의 시선이 문우빈에게 꽂혔다. 문우빈도 지지 않고 그를 쏘아보며 불에 기름을 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 대표님, 제대로 된 전 남편이라면 죽은 사람처럼 조용히 지내는 게 예의입니다. 그런데 주 대표님은 지금 시체놀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오늘은 령은 누나 생일인데, 친구분까지 데리고 와서 눈살 찌푸리게 하지 마시죠?”

주윤우는 순간 멈칫했다. 화를 낼 겨를도 없이 문우빈의 말속에서 핵심 단어를 포착했다.

정령은의 생일?

청년의 당황한 시선이 정령은에게로 향했다.

“오늘… 네 생일이야?”

그가 입을 열지 않았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그 한마디에 정령은은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마음은 이미 상처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상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말 한마디에 분명 고통스러워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윤우, 내가 무슨 웃음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비꼬는 걸로 이해해도 될까?”

정령은의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내 생일이 언제라고 생각했는데?”

주윤우는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떤 형용사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침묵하자, 이준호가 나설 준비를 마쳤다.

그는 악의 가득한 눈빛으로 정령은을 노려보며, 입을 열자마자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다.

“너 원래 웃음거리 맞잖아? 이혼하자마자 바로 남자를 찾아? 정령은, 네가 그렇게 외로웠냐? 어쩐지 윤우 형이 널 거들떠보지도 않더라. 네 몸에 정 씨 집안 피가 흐르는 거 말고 연우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데? 너…”

이준호가 신나게 욕을 퍼붓던 다음 순간, 주먹 하나가 그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문우빈의 두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이준호는 예기치 못한 공격에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주둥아리에서 똥을 싸고 있네. 이 형님이 네 애미 애비 대신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이준호는 머릿속이 온통 멍했다.

문우빈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급히 앞을 막아서며 주윤우를 불렀다.

“윤우 형!”

주윤우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령은, 그만해!”

여자는 문우빈을 자기 등 뒤로 끌어당기고 주윤우와 마주 섰다. 상대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지만, 기세만큼은 지지 않았다.

그녀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고, 눈에는 차가운 빛이 서렸다.

“내가 그만하라고? 당신이 데려온 개자식이 먼저 시비 건 거 아니었나? 그놈이 날 욕했고, 내 친구가 날 감싸준 건데, 무슨 문제라도?”

“주윤우, 우리 우빈이가 나보다 먼저 나선 걸 다행으로 생각해. 만약 나였다면, 주먹 한 대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남자는 지금의 정령은이야말로 그녀의 본모습이라고 느꼈다.

결혼 후 그녀가 일부러 보였던 순종적인 모습과 이해심 많은 태도를 떠올리자, 남자의 눈빛이 가라앉으며 입가에 조소 어린 미소가 걸렸다.

정말이지, 공을 들여도 단단히 들였구나.

두 사람은 잠시 대치했다. 마침내 남자의 목울대가 움직였고, 그는 여전히 죽을 줄 모르고 날뛰려는 이준호를 붙잡았다.

그가 물었다. “정령은, 오전에… 부흥대교에서 교통사고가 날 줄 어떻게 알았지?”

하루 종일 그를 괴롭혔던 문제였다.

정령은과 구청에서 헤어진 후, 그는 회사로 가기 위해 부흥 고가도로를 타려 했다.

막 다리에 진입하려던 참이었지만, 문득 정령은이 한 말이 떠올라 귀신에 홀린 듯 기사에게 길을 돌아가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흥대교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주윤우는 이것이 우연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냥 알았으니까.”

정령은은 문득 주윤우의 등 뒤에서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준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악의적으로 입꼬리를 올린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목숨을 거두러 온 악귀 같았다. “그리고 난 이것도 알아. 너, 곧 죽는다는 거.”

이준호의 주위를 맴도는 사기가 점점 더 짙어지고, 그를 줄곧 따라다니던 악령의 기운 또한 점점 더 흉흉해지고 있었다.

거기에 정령은이 일부러 악령에게 힘을 실어준 탓에, 원래 한 달은 더 살 수 있었던 이준호의 목숨은 이제 몇 시간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그가 저지른 악행은 법으로 심판할 수 없으니, 상대방의 손에 심판받게 하는 수밖에.

이준호는 억울하게 죽는 것이 아니었다.

정령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오싹한 한기를 느꼈고, 이준호는 더욱 분노하여 피를 토할 뻔했다.

정령은, 저 천한 것이 감히 자기를 죽으라고 저주하다니!

룸 안의 분위기는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주윤우는 정령은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걸려 온 전화를 받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눈엣가시 같던 자들이 마침내 사라졌다.

문우빈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채 말했다. “령은 누나, 그냥 저렇게 보내 버리는 거야?”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주윤우가 그 쓰레기 같은 놈이 정령은을 모욕하도록 내버려 뒀다는 점이었다.

정령은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찍 보내줘야 이준호가 빨리 죽지 않겠어? 쟤 오늘 밤을 못 넘길 테니, 괜히 화내서 네 몸만 상하게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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